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결심

 곰곰히 많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꿈은 크게 갖는게 좋은거 같다. 그리고 허황될수록 낭만있고 설래인다. 좀 되긴 했는데 와이프 허락을 받아서 머릴 밀게 되었다. 점점 줄어가는 머리숱을 애써 왁스로 세우곤 했는데 이젠 그 왁스 힘빨도 떨어져서 오후만 되면 축 쳐져버리는 머리카락이 안타까워 확 짧게 잘랐다. 또 엄청 관리하긴 귀찮아서 아예 밀진 않고 적당히 짧게 잘라서 한 이주에 한번씩만 자르면 된다. 이거 생각보다 스타일이 괜찮은 듯. 이러고 보니 갑자기 꿈이 생긴게 근육 대머리이다, 마치 구준엽이나 숀리 같은. 다들 근육이 먼저 생기고 다음에 머릴 밀었겠지만 나는 반대로다. 머릴 밀었으니 이제 기본조건은 충족하고 이제 두번째로 향할 차례이다. 그리고 또 문뜩 생각나는게, 독일어 소설가가 되고 싶다. 한국어로도 엄청 못쓰고, 또 꾸준히도 못하는데, 그냥 소설가라는게 좀 멋져 보이고 허세가 쩔게 될 수 있을거 같다. 그리고 독일어로 글을 쓴다는게 엄청 낭만있어 보인다. 부드러운 한국의 감성을 딱딱하고 자로 잰 듯한 독일어로 뽑아내야 한다니, 이거 참 드라이하구만. 뭔가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나에겐 딱 알맞는 취미거리 같다. 실상은 초등학교 1학년보다 낮은 작문 실력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원래 이렇게 시작해서 글실력이 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글도 쓰다보면 나아지겠지, 아마도? 그래서 나는 근육빵빵 반삭머리 독일어 소설가 (B2 실력 10년 보유, 늘지 않음) 가 되기로 결심했다. 놀랍게도 농담이 아니다.

취미는 굳이 자기 개발이 안되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뭐든 자기발전이랑 연관지어서 취미를 정했던 것 같다. 이거 배워두면 나중에 돈벌이가 될 지 몰라, 이거는 좀 알아두면 직업 구하기가 쉬울지 몰라, 이건 나중에 오랜 기간이 되면 자기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지 몰라 하고 말이다. 언어도 꼭 직업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메이져인 언어들만 배우려 하였고, 자기 개발 서적을 주로 읽으려고 했고, 불필요한 것들에 들이는 시간에는 꼭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 좀 더 문장력이 높아질꺼야, 마라톤을 하면 자신이 강해질거야, 수리를 배우면 나중에 밥벌이에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몰라 하고 되돌아보니 즐거워서 한게 없네? 대부분이 뭔가를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들을 하려다보니 매번 시도하다가 쉽게 포기하고 하는거 같다. 그러니 하면서도 즐거움을 못느꼈겠지. 이제는 해야해서 하는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게 있으면 좋겠다.

100일이 지나며

대략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재활병원에서의 긴 시간을 보내고 한국을 3주 다녀오니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나 버렸다.  생각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문득 이렇게 살면 안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과 한치도 바뀌지 않은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게 안타깝기도 하고, 그리고 그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를 수도없이 고민한 결과가 이건가에 대한 실망도 좀 있고해서 다시 나를 추스러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을지에 생각해 보았으나, 딱히 엄청 바꿀 필요가 있을까 하긴 하다만 지금의 나는 좀 바꾸긴 해야겠다.  새 삶을 산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엄청 변해 버리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데 처음의 다짐은 퇴색이 되고 이전과 같아지려하고 하거나 혹은 더 안좋아지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는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길 바라고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고 싶다.   핸드폰은 부단히 열심히 보고 있는데 대부분이 정말 필요하거나 아니면 보고 있는게 재밌어서 보는거보다 당장 할게 없어서 혹은 습관적으로 보는게 더 큰 듯 하다. 어떻게 다시 돌아온 기회인데 이렇게 안타깝게 시간을 보내는건지. 핸드폰은 잠시 제쳐두고 지금 당장 하는 것에 집중해보자.  생각해보면 나는 일어날지 모르는 먼 미래에 대한 걱정에 이것도 부정적 저것도 부정적이었는데 이제는 안그랬으면 좋겠다. 먼 미래의 불안에 고민하기보다는 당장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좀 더 밝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에 대한 걱정이나 일에 대한 걱정들에 짓눌려 평생을 산다는건 나 자신에게도 참 안타까운 일이니 이제는 좀 마음을 놓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깃든 조금은 방임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혹시나 하고 싶은게 생기면 후회하지 말고 한 번 도전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용기를 불어주고 싶다...

재활병원의 식사기록 1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로 계속 재활병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버짓의 문제로 약 5일간 연기가 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어서 빨리 재활을 시작하고 싶은데 계속 집에서 대기를 해야만 하였다. 퇴원하고 2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재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시설에 가는 것이라 조금 걱정을 하긴 하였지만 나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고, 그리고 사람들도 친절하여 안도가 된다. 재활병원에서의 생활은 닥 두단어로 요약되는 듯 싶다. 운동과 독일어 공부 총 6시간의 재활훈련 시스템에서 30%는 세미나 및 개별 상담을 하고 나머지 70%는 운동이 이 시간들을 채우고 있다. 심장을 다시 이전처럼 제대로 동작시키기 위해서 많은 운동을 겪어야만 했다. 운동이야 이전에도 계속 하던 것이라서 그리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으나 독일 병원들보다 더 열악한 재활병원에서 점심끼니를 때우다 보니 매번 한숨이 나온다. 우리같은 심장 환자는 식단을 잘 조절해야 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른 골반이나 무릎 부상 환자들도 덩달아 특이한? 식단을 먹어야 하는데  다들 점심을 먹는게 고역인 듯 싶다. 내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거쳐간 어느 병원보다 더 떨어지는 식사가 여기서 제공된다. 음식을 싸가면 되지 않느냐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하는데  그러면 결국 내 음식은 버리게 되고 그게 또 걸리는 나는 어리석게도 매 끼니를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첫날 나온 이 야채스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당근, 완두콩, 콩줄기, 컬리플라워, 컬리플라워 몸통으로 만든 스튜인데 그냥 물에 삶고 아무런 조미료도 넣지 않았다. 예전에 한국이 전쟁으로 아주 어려웠을 때에도 이렇게는 안먹었을텐데 말이다. 이날 사람들이 음식에 충격을 먹고 분노하여 세미나 시간에 불만을 엄청 토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건 독일사람이건 누구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둘째날 음식인 비건 파스타다. 그냥 케챱 섞은 듯 하다. 셋째날에 플렌트베이스 음식을 처음 먹어봤다.  콩으로 만든 슈니첼인데 ...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이번에 큰 일을 겪고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새 삶을 얻었다고 생각하라고 많이들 격려해 주었다. 새 삶이라, 지금까지 한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주제라서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니 다소 어색하긴 하다. 사고가 있은지 한달이 지났고, 그 사고 전과 다른 부분은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졌고,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는 것도 있다. 어떻게 새 삶을 살아야 올바른 삶이 될 것인지에 대하여도 나름 생각의 지분을 나누어서 틈틈히 되뇌이곤 하였으나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가끔 새 삶을 산 사람들의 변천사 같은걸 TV나 인터넷글에서 본 기억이 얼핏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대단한 사람들의 대단한 이야기처럼 큰 변혁이 있는 삶은 어려울 것 같고, 그리고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다소 기력이 떨어진, 의욕이 엄청 앞서지는 않은 40대의 아저씨가 되어 버려서 어쨌거나 무리한 삶은 어렵지 않나 싶다. 다행일지 아니면 다행이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왔어서 지금에 와서 아.. 예전에 못했던 걸 해보자 하는 다소 충동적인 삶의 욕구는 따로 없고, 그리고 예전에 못이룬 꿈을 이제와 다시 실현시켜보자 하기에도 예전의 꿈들은 지금에 와선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목표들이 되었다. 혹은 지금 다시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다. 10대에는 꿈이 남을 웃기는 사람 혹은 요리사였는데 남을 웃기는 사람은 내 자신이 딱히 남을 웃길 수 있는 재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게 되어 아주 멀리 떨어진 꿈이 되었고, 요리사는 40대가 될 때 까지 요리를 해오며 내가 요리하는 것 보다 남의 음식을 먹는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아주 어린 시절의 꿈들은 이제 놓아줘야할 듯 하다. 20대에 꾼 3가지 꿈들 중 2가지는 얼추 이루었고, 마지막 1가지인 호스텔 사장은 나름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비슷하게 충족을 시켜 주었고, 그리고 숙박업 또한 참 힘들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이것도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한...

달리기는 어째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건 독일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건조한 독일 날씨에 몸이 적응을 못해서 그런가 추운 겨울에 온몸이 가렵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몸의 온도가 올라가도 몸에서 열꽃이 퍼지고 가려워서 견딜 수 없었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와 맞지 않는구나 싶다가도 굴복하지 말고 견뎌내고 싶었다. 여러가지 실험을 하다가 보니 몸에서 열을 방출하지 않고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려워진다는 나만의 나름의 괴변이 생겼다. 실제로 뛰면서 땀을 엄청 나게 되면 후에 하루이틀간은 가렵지가 않았고, 그래서 겨울이 되면 계속 뛸 수 밖에 없었다. 2015년에 담배를 끊게 되었다. 담배를 끊은 다음에 내 심폐력은 어느 정도까지 돌아가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2016년에 마라톤을 뛰어 보기로 하였다. 그래도 나름 20살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와서 그런지 마라톤은 수월하게 완주를 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뭔가 의무적으로 일년에 한두번은 건강을 위해 뛰어보자는 다짐을 하였다.  달리기는 시작도 힘들지만 뛰는 순간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무런 동작의 변경없이 계속되는 동작의 반복이었고, 다른 운동처럼 다이나믹한 부분도 없어서 매 순간 지루해하였고 그걸 참고 견뎌야하였다.  달리기 모임에 들어가면서 비슷한 환경에 비슷하게 운동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이전처럼 혼자 뛰는게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뛰게 되면서 지루함은 많이 상쇄가 되었고, 달리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이 운동을 즐길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그렇게 또 몇해가 지나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밖에 나가기가 부담스러워지면서 점점 운동에서 멀어졌던 것 같다. 스무살부터 시작해 거진 20년을 하던 검도에 대해서도 다시 시작하게된 때가 그쯤이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점심을 먹으러 간 장소에서 같은 모임의 사람들이 풀마라톤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내가 이렇게 움츠려들고 움직이지 않았을 동안 계속해서 달려오던 그들을 보며 약간이나마 마음속...

자식 자랑

 지금 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침대가 세개 놓여있는 병원으로, 지금까지 들러본 프랑크푸르트의 병원 중에 가장 최악의 병원이다. 날씨도 꿉꿉하고 다들 씻지도 않아서 냄새가 최악일 듯 하지만 다행히 최근에 감기에 걸리고난 이후에 냄새를 맡을 수 없어서 꽤나 지낼만하다. 음식 역시 그동안 와이프 대신에 먹었던 병원밥 중에 최악을 달리지만 그또한 건강한 음식을 먹는거야 하고 셀프최면을 걸어보니 또 나름대로 건강식으로 탈바꿈을 하게된다. 언제나 정신승리는 위대한 것이다. 다른 두명의 환자는 각각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출신의 할아버지들인데 독일에 참 오래들 사셨다. 코소보 할아버지는 내 아버지와 같은 연배로, 병원에 오래 있는걸 극도로 싫어하고 병원밥을 끔찍히 싫어하신다. 우리가 하루 여기에 숙박하면 병원이 인당 600유로를 받는다는데 정말인가? 아프가니스탄 할아버지는 육십대분인데 증상이 나와 비슷하고 이전에 이미 같은 병세로 입원을 한 전적이 있는 분이다. 조용조용한 성격이라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두사람의 공통점은 우선 무슬림이고, 둘째는 자식자랑이 엄청나시다는 것이다. 새로운 간호사가 오면 처음에 간단히 인사를 한 다음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해 주신다. 자식은 몇이고, 자식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등등. 그런데 그게 단어 하나 안틀리고 거의 동일하게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나도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나오겠거니 하고 짐작이 간다.  다행히 간호사들은 친절하게 좋은 쪽으로 반응들을 해줬고, 할아버지들도 뭔가 내 인생은 틀리지 않았어 하는 흡족한 얼굴로 간호사들과의 대화 후에 침대에 얼굴을 묻으신다. 본인들의 삶의 이야길 들으면 그게 더 대단한거 같은데 자기가 이룬 것보다 자기 자식들이 이룬 것들이 더 찬란하게 빛나나 보다. 자식자랑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나 다 똑같거니 싶다. 누군가에게 내 자식들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거리는 것은 본능인가 싶다. 과거에는 내 부모님이 남 앞에서 내 자랑을 하시는게 너무 낮...

다시 시작?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글을 쓴게 23년 5월 10일 이었다. 2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지났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얼마전에 아는 동생이 찾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블로그 이야기가 나왔다.  한참을 팽개쳐놓은 까닭에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더 쓸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 때 까지는… 저녁에 달리기 이벤트에 참여하여 가볍게 달리다가 갑자기 심정지가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아무런 기억이 없으나 주변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일들이 생겼었다고 전해 들었다.  깨고나서 보니 온몸에 넘어져서 난 상처들이 보였고, 강한 심폐소생술로 인한 통증이 몸에 고스란히 기억되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에게 와이프는 운이 정말 좋았다고, 천운이 따라줬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스텐트 시술을 받아 앞으로 평생 이물질을 가슴에 품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약을 평생 먹고 살아야지만 참 살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응급실의 친절한 남자 간호사가 나에게 두번째 삶이 주어졌으니 파티를 두번째 삶을 축복하는 파티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으나 이전과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싶다.  비록 자그마한 변화라 조금 더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기 위해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 한다. 힘내자!!

여전히 짭조름하고 양많고 싼 Wayang

보켄하임 Leipziger str에 위치한 인도네시안 레스토랑 Wayang 여긴 저렴하고, 양 많고, 그리고 살짝 음식이 짜다. 예전에 친구들과 한 번 먹었었고,그리고 배달로도 한 번 먹었었다. Wolt에서 쿠폰을 막 뿌렸을 때 메뉴 하나에 4유로면 먹을 수 있어서 시켰었는데 이게 할인은 픽업말고 배달만 가능한거라 어쩔 수 없이 배달로 주문했다. 배송거리가 정말 10미터였는데 그 때 배송하던 주인은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오랜만에 이 음식이 기억나 다시 방문하였다. 예약이 불가능하고 와서 바로 테이블 잡으면 된다고 하였는데 다행히 빈 자리가 있었다. 음식 맛은 전과 동일하다. 식재료도 전혀 바뀐게 없고 맛도 그대로이다. 아마 5년뒤에도, 10년뒤에도 같은 맛이지 않을까 싶다. 다음에 방문할 때엔 정말 5년뒤에 들르면 될거 같다.

중국 면집 The Noodlemaker

일본라멘은 가격이 좀 비싼 편이다. 대략 메뉴 하나에 14유로 정도이고, 여기에 맥주 하나 시키면 20유로정도 한다. 면식에 내는 돈이 살짝 비싸지 않나 싶다가도,  베이스로 만드는 돼지육수 전기세를 생각하면 합리적이지 않나 싶다.   언제부턴가 중국면집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하였다. 가격은 대략 11-12유로정도라서 라멘보단 살짝 부담이 덜하다. 우려낸 국물은 스탁을 쓰는 듯 하여 라멘에 비해 노력은 적은 듯 한데 또 면이 수타라서 그렇게 폄하하기도 애매한 입장이다. 면도 수타이고 국물 내는거도 비싸면 가격도 엄청나겠지? 중국면집은 가볍게 먹고플때나 아니면 주머니가 가벼울 때 좀 어렵지 않게 들를 수 있을 듯 하다. 손님 참 많더라,

터키 후식 Antepia Künefe Katmer Baklava

보켄하임에 아주 가끔 가는 터키식 후식 가게가 있는데 여기 후식은 적당히 달고 엄청 맛있다. 후식하나가 17유로라 좀 비싸긴 하다만 누구와 같이 쉐어하면 나쁘지 않다. 다른 메뉴도 하나에 8유론가 하던데 비싼 재료인 피스타치오를 마구마구 뿌리니  재료값은 엄청 들 듯 하다, 일년에 한번만 들르도록 하자.

꼭꼭 숨어있는 미소가

미소가라는 요즘 한국분들에게 핫한 돈까스집이 있다. 위치는 니트 근처인데 대중교통으론 가기 어렵다고 한다. 차로 이동해서 갔는데 주위가 다 주거지라서 살짝 주차하는데 불편하였으나 좀 돌아보다가 쉽게 주차구역을 찾았다. 가게는 독일 옛 레스토랑을 개조한 듯 보이고, 매우 깔끔하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아주 많이 쓰신 듯. 돈까스는 역시 사람들 말과 같이 내 개인적 기준으로도 푸프에서 제일 맛있다. 일본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먹진 않았으니 한국 레스토랑 중에서만으로 한정해서 말이다. 바싹하고 부드러운 튀김의식감으로 이내 행복해진다. 밥이 너무 적어서 살짝 아쉬웠는데 언지부터 누군가가 돈까스에 밥을 적게 주기 시작했을까? 밥이 정말 쬐그마한 애기밥인게 실짝 아쉽지만 이외에는 모든게 만족스러웠다.

터키식 파인다이닝 Mezze & More

친구커플과 터키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들었다. 사실 터키식인지 그리스식인지는 좀 애매했는데 터키식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터키음식들을 정성스럽게 플레이트 위에 올렸다. 보기에 참 예뻤고, 맛도 참 예뻤다. 그리고 가격은 후덜덜…. 호기심으로 들르긴 했는데 이 가격에 다시 들를진 모르겠다. 절반이 안되는 가격으로 우르파에서 배터지게 먹는게 나에겐더 맞지 싶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Isha 호텔의 Isha 인도 레스토랑

보켄하임과 뢰델하임의 경계에 Isha 라는 호텔이 위치해 있다. 얼핏 봐서는 독일 호텔인데 같이 운영하는 식당은 인도 레스토랑이다. 아마 하이데크룩같은 인도인이 운영하는 호텔 겸 레스토랑인 듯 하다. 평이 꽤나 좋은지라 언제 한 번 들르자 하다가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인도 레스토랑은 약간 편견이 있어 그런가 항상 인도 레스토랑만의 진한 색이 있는데  여긴 다른 곳과는 달리 좀 모던한 느낌이 많이 난다. 음식은 대체적으로 정갈한 느낌인데 아무래도 독일 손님들이 많아서 그런지 약간 독일식으로 바뀐 듯 하다. 인도음식의 강렬함이 억제되고 독일의 밋밋함이 좀 배가 되었다. 독일인에겐 추천할만하나 자극적인 음식을 추구하는 나같은 사람에겐 비추이다. 탄두리 요리 중 녹색인 음식이 있는데 처음엔 브로콜리인 줄 알았는데 닭고기라 깜짝 놀랐다. 썰기 전엔 영낙없는 미지의 야채요리였는데 말이다.

터키식 브런치 가게 cafe Mola

작센하우젠에 위치한 cafe Mola에서 친구들과 오랜만에 브런치를 먹었다. 몇몇은 코로나 이후 3년만에 보는데 다들 새로운 소식들을 많이 가져왔다. 둘째가 생긴  친구도 있었고, 다른데서 알았던 두 친구가 서로 사귀게 되어 커플로도 나오고, 암튼 참 새로운게 많았고 나역시도 새로운 소식을 많이 전하였다. 카페 메뉴를 보니 대부분 터키와 연관되어 있다. 내향적 성격이라 카페 주인에게 이러쿵 저러쿵 묻진 못했으나  아마도 터키주인이 터키식 브런치 컨셉을 잡고 운영하는 곳 아닐까 싶다. 대부분 나라들의 브런치는 비스비슷한 듯 싶다. 오히려 아침에 밥과 국을 먹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아침이 많이 이국적인가보다 싶다. 언젠가 먼 훗날에 여기 푸프에도 한국식 브런치 가게가 열릴까? 막 뼈다귀탕이랑 순대국밥이랑 파는 식당 말이다. 아픙로 최소 30년은 더 여기 살아야 하는데 그런 조식 식당 하나 열리면 정말 좋겠다.

트러플 듬쁙 파스타

친구에게 트러플소스를 선물 ㅂ다았는데 오일과는 다르게 좀처럼 어떻게 써야할지 아이디어가 서질 않는다. 빵 위에 올려먹거나 비스켓 위에 올려봤는데 트러플 향이 너무 강한건지 좀처럼 취향에 맞지는 않는 듯하다. 고민 끝에 크림 파스타 위에 얹어서 먹어 보았는데 나름 여러 시도 중 가장 나은 듯 하다. 한 통 다 먹으려면 크림 파스타를 몇 번 해야하는 걸까?

샤프란이 남아서 만든 해물 빠에야

  해가 지나기 전에는 보통 집안 살림중 필요없는 것들을 정리한다. 음식들도 마찬가지인데  집에 남은 조미료들 중 유통기한이 가까운 것들은 바로바로 소진하려고 노력한다. 코로나때 잠깐 이런저런 음식들을 만들어 봤었는데 스페인 음식들도 그중 하나였었다.  빠에야도 만들고, 감바스알아히요도 만들곤 했었는데.. 정리하다가 사프란 한줌을 발견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모두 해치우려고 하였는데 어찌하다가 올해로 넘기게 되었고, 마침 시간이 남아 빠에야를 할 때 같이 넣어 먹었다. 빠에야르르넣자마자 갑자기 변하는 밥들의 색이 따스하다. 마치 물감으로 채색하는 듯 하다. 맛은 좀 밍밍하네, 담엔 다시다라도 좀 섞어야할 듯 하다.

새해 아침 떡국과 칠첩반상

23년이 밝았다. 새해엔 좋은 음식을 먹어야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어제 음식과 사투를 벌인 나를 대신해 옆지기가 오늘의 메뉴들을 준비하였다. 약간 늦은 아침으로 먹은 첫끼는 사골을 잘 우려낸 떡국이다. 수펜플라이쉬로 소갈비살을 샀는데 이걸로 육수를 우려내니 엄청 깊은 맛이 나왔다. 올해는 전기세로 골머리를 앓은 예정이나  오늘 하루만은 일단 이런저런 걱정말고 많이 요리하였다.   엄청 깊은 맛의 새해 떡국과 담근지 얼마 되지 않아 상큼한 맛의 석박지와 김치 저녁엔 칠첩반상을 준비해 주었다. 칠첩반상에 국과 김치류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계획은 원체 7가지 반찬이었으나 어쩌다보니8찬으로 하나 늘게 되었다. 새해부터 가득차게 잘 먹고 한 해를 시작한다. 맛좋고 예쁜 이 반찬들처럼 올 한해 많은 좋은 일들이 가득차길 바란다.

바싹바싹한 Dosa가 맛있는 Saravanaa Bhavan

12월의 마지막주에 베간 친구를 만나기로 하였다. 종교적인 이유로 베간을 행하는 이 인도친구는 정말 좋아하는 친구긴 하다만 단지 뭘 먹으러 갈 때만 조금 아쉽다. 그래도 다행이 맛있는 베간 레스토랑이 도처에 있어서 그리 어렵게 장소를 섭외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Saravanaa Bhavan이 가장 좋아하는 베간 레스토랑이 되었다. 전에는 북부인도음식을 많이 주문했지만 Dosa를 먹어보고 나서는 이젠 무조건  Dosa다. 이 음식을 먹을 때 그 바싹 깨지는 듯한 식감이 너무 좋다.   비록 사이즈는 엄청 크지만 아쉽게도 두시간 뒤면 다시 배가 고파온다. 이번에 처음 먹어본 렌틸콩튀김 마살라 스프인데 그 알싸한 매운 맛이 너무 좋다. 그래도 어쩐지 매번 먹는 음식만 계속 먹는 듯 하다. 다음에는 꼭 다른 음식들을 도전해 보기로 하자. 그래도 인도 현지화된 중국음식은 좀처럼 손에 가질 않긴 한다.

우당탕탕 이탈리아 여행

추운 크리스마스를 독일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근처 어딘가로 여행을 갈까 찾아보다가 이탈리아 중부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침 비행기라서 기대에 가득 차서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루프트한자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항공편이 취소가 되었다. 이게 우리 항공편만 그런게 아니라  꽤 많은 항공편들이 취소가 되어서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이 모두 공항에서 패닉이 되어 있었다. 원래 가려던 곳의 항공편은 하루에 두대밖에 없어서 다른 도시의 항공편을 알아 보았는데  갈 수 있는게 오늘 저녁 늦게까지라고 한다. 아침에 공항에 왔으니 밤늦게까지 공항에서 기다릴 수가 없어 집에 들렀다가 한 숨 자고 다시 공항으로 나왔다. 비행기에 탑승한 이후에도 짐을 옮길 스탭이 없다고 하여  한시간정도 더 연착이 된 이후에나 이탈리아 도시에 도착을 하였다. 우여골절 끝에 어쨌거나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행복하다.  아마 내일 항공편으로 연기하였으면 못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피사의 약간 허름한 식당에 갔는데 여기 해산물이 유명하다고 한다. 아시안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시는데 이 해산물 스프가 우리의 지친 몸을 정말 사르르 풀어주었다. 같이 곁들여 먹인 해산물 그릴 플레이트 이탈리아의 횡성이라 불리는 피렌체에선 소고기를 많이 잡쉈다. 티본스테이크는 그 무게가 1.2키로 정도 되는데  이젠 나와 옆지기 둘이선 감당하기 힘든 무게이다. 같이 먹은 파스타는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맛있었던 파스타로 기억된다. 이탈리아 카푸치노는 1.4유로인 곳이 대부분이다.  우와 이탈리아 커피 최고!!!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인상깊었던 베키오 다리 숙소 근처에 귀도? 라는 대를 이은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이탈리아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파스타가 있는데 피렌체는 꽤나 두툼한 파스타에 라구소스를 올린게 여기 대표음식인 듯 하다.  까르보나라는 어디든 맛난다. 이 레스토랑에서도 소고기를 먹었는데 딱 이정도 양이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