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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어째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건 독일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건조한 독일 날씨에 몸이 적응을 못해서 그런가 추운 겨울에 온몸이 가렵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몸의 온도가 올라가도 몸에서 열꽃이 퍼지고 가려워서 견딜 수 없었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와 맞지 않는구나 싶다가도 굴복하지 말고 견뎌내고 싶었다.

여러가지 실험을 하다가 보니 몸에서 열을 방출하지 않고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려워진다는 나만의 나름의 괴변이 생겼다. 실제로 뛰면서 땀을 엄청 나게 되면 후에 하루이틀간은 가렵지가 않았고, 그래서 겨울이 되면 계속 뛸 수 밖에 없었다.


2015년에 담배를 끊게 되었다. 담배를 끊은 다음에 내 심폐력은 어느 정도까지 돌아가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2016년에 마라톤을 뛰어 보기로 하였다. 그래도 나름 20살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와서 그런지 마라톤은 수월하게 완주를 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뭔가 의무적으로 일년에 한두번은 건강을 위해 뛰어보자는 다짐을 하였다. 


달리기는 시작도 힘들지만 뛰는 순간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무런 동작의 변경없이 계속되는 동작의 반복이었고, 다른 운동처럼 다이나믹한 부분도 없어서 매 순간 지루해하였고 그걸 참고 견뎌야하였다. 


달리기 모임에 들어가면서 비슷한 환경에 비슷하게 운동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이전처럼 혼자 뛰는게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뛰게 되면서 지루함은 많이 상쇄가 되었고, 달리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이 운동을 즐길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그렇게 또 몇해가 지나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밖에 나가기가 부담스러워지면서 점점 운동에서 멀어졌던 것 같다. 스무살부터 시작해 거진 20년을 하던 검도에 대해서도 다시 시작하게된 때가 그쯤이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점심을 먹으러 간 장소에서 같은 모임의 사람들이 풀마라톤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내가 이렇게 움츠려들고 움직이지 않았을 동안 계속해서 달려오던 그들을 보며 약간이나마 마음속에 동요가 생겼다. 아직 달리기가 정말 즐거운 운동인지 느껴본 적이 없어서 달리기를 포기할 때는 이르지 않은가 싶어 다시 운동화의 끈을 고쳐매었다.


그 전보단 달리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누그러져서 그런가 속력도 더 잘 나오고, 달리러 나가는게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거진 12년만의 변화를 이제서야 느끼는 듯 싶다. 이왕 이렇게 변화하는 김에 목표를 가지고 달리는건 어떨까 싶어서 기록에 신경을 써보기도 하고, 그래서 나름대로 목표하는 바도 이루게 되었다. 


23년에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로써 어떤걸 아이에게 물려줘여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계속 생각해봐도 아무런게 떠오르지 않았다. 딱히 잘 하는 것도 없는 듯 하고,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도 특출난 재능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없으면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않나 하고 말이다. 아이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노력의 끝이 어떤지 결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가 다 클 때까지 매년 마라톤을 뛰기로 다짐을 하였다. 이런거라도 아이에게 뭔가를 남겨주고 싶었다. 열심히 사는 아빠란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가 태어난 그 다음해의 마라톤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원하는 목표에 살짝 빗나가긴 했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고, 마라톤 완주후에 같이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였다. 매년 이렇게 한번씩 행복한 순간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게 소소하지만 정말 큰 내 인생의 선물이었고, 나에게는 아주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대회가 지나고 일주일 후에 갑자기 몸이 마비가 되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으나 나중에 자세히 알고보니 디스크란다.  몸이 안좋아서 운동을 쉰거는 태어나 처음인 듯 하다. 항상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장기간의 휴식 후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전과 같은 100퍼센트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난 달릴 수 있었고, 다시 목표를 위해 달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심장에 문제가 생겨 버렸고,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한 동안 병에 대한 여러 정보를 확인하였고, 결론은 앞으로도 계속 뛸 수 있고 뛰어야 하지만 풀마라톤은 삼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좋게 될 확률이 약간이라도 있으면 아이를 생각해서 하지 않아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라 이제 정말로 풀마라톤과는 안녕일 듯 싶다. 


풀마라톤을 못뛰게 되어서 슬픈가 하고 생각해 봤는데 그닥 달리는걸 좋아했던 것도 아니라서 한 편으로는 이 지긋지긋한 운동 그만해도 되어서 다행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더이상은 7월부터 9월까지 다리 퉁퉁 불어가면서 장거리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파서 집에서 끙끙 앓을 필요도 없는거 같다. 


그래서 더욱 애석한거 같다. 이제야 조금 일상의 일부로써, 수행한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좋아지려한 운동을 그만둔다는게 말이다. 달리기 모임 사람들이 대회이야기를 하게되면 아무래도 움츠려들고, 부러울 수밖에 없을 듯 싶다.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하면 안된다는게 참… 가장 큰 상실감은 아무래도 좋은 아빠가 되려던 계획이 살짝 틀어진거 아닐까 싶다. 어떤게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인지 몰라 한참 고민을 하다가 낸 결론으로 달리기의 목표를 삼고 정진하는 성실한 아빠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제 이 방법을 조금 수정할 때가 온거 같다.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때 다행인건 이제 심장질환으로 평생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장을 위해 최소 일주일에 3회이상 30분이상을 유산소운동을 해야 한다는데 이건 참… 내가 그 15년동안 꾸준히 하던, 싫어도 참고 계속해와서 이젠 익숙하고 또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운동이다.


이렇게 내 삶과 내 달리기의 2막이 시작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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