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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이번에 큰 일을 겪고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새 삶을 얻었다고 생각하라고 많이들 격려해 주었다.

새 삶이라, 지금까지 한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주제라서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니 다소 어색하긴 하다.

사고가 있은지 한달이 지났고, 그 사고 전과 다른 부분은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졌고,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는 것도 있다.

어떻게 새 삶을 살아야 올바른 삶이 될 것인지에 대하여도 나름 생각의 지분을 나누어서 틈틈히 되뇌이곤 하였으나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가끔 새 삶을 산 사람들의 변천사 같은걸 TV나 인터넷글에서 본 기억이 얼핏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대단한 사람들의 대단한 이야기처럼 큰 변혁이 있는 삶은 어려울 것 같고, 그리고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다소 기력이 떨어진, 의욕이 엄청 앞서지는 않은 40대의 아저씨가 되어 버려서 어쨌거나 무리한 삶은 어렵지 않나 싶다.


다행일지 아니면 다행이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왔어서 지금에 와서 아.. 예전에 못했던 걸 해보자 하는 다소 충동적인 삶의 욕구는 따로 없고, 그리고 예전에 못이룬 꿈을 이제와 다시 실현시켜보자 하기에도 예전의 꿈들은 지금에 와선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목표들이 되었다. 혹은 지금 다시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다.


10대에는 꿈이 남을 웃기는 사람 혹은 요리사였는데 남을 웃기는 사람은 내 자신이 딱히 남을 웃길 수 있는 재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게 되어 아주 멀리 떨어진 꿈이 되었고, 요리사는 40대가 될 때 까지 요리를 해오며 내가 요리하는 것 보다 남의 음식을 먹는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아주 어린 시절의 꿈들은 이제 놓아줘야할 듯 하다.


20대에 꾼 3가지 꿈들 중 2가지는 얼추 이루었고, 마지막 1가지인 호스텔 사장은 나름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비슷하게 충족을 시켜 주었고, 그리고 숙박업 또한 참 힘들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이것도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한다.


30대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해외로 왔을 때 한 때는 재활공학을 공부하여 열심히 공부한 노력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겉멋이 들은 혹은 가식으로 덮은 한 때의 인류애가 넘치는 꿈을 꿨던 시기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취직자리도 없고, 그리고 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게 그 자리가 오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밥벌이에 전전긍긍하기 무서워하는 30대에게는 잠깐이나마 나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사람이야 하는 기분에 취하게 되는 시기를 보냈었고 그리고 사그라들었다.


나의 40대는 이미 미래가 거의 완성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이 되었었고, 그리고 그렇게 따로 허무맹랑한 아니면 도전의식 크게 일으키는 일상의 전환이 없이 잔잔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더이상 꿈에 대해 설래는 나이는 아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가족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아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공통의 목표가 나오게 되어 그동안은 딱히 뭔가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이렇게 기회라는게 다시 찾아왔고, 그리고 지금은 잔잔하게 내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두드리고 있다. 이제와서 누군가를 감명시킬 훌륭한 삶을 살 것이라고 인생지표를 거대하게 잡는 것도 무리긴 하다만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 없이 그렇게 별다른게 없는 삶을 계속 영위하는 것도 내키진 않아서 요즘은 가끔씩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한다.


계속 생각이 바뀌긴 하는데 그래도 오늘 낮에 생각했던건 나름 나쁘지 않은 듯 하다. 

원체 만화를 많이 좋아했었고, 그리고 긴 글을 읽는걸 싫어하여 책은 10대 이후로 많이 보진 않았었으나 30대 후반이 되어 보니 언어를, 특히 영어를 구사하는데 있어 뭐랄까 조금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이건 아무래도 문법을 소홀히한 부분도 있지만 책을 읽으며 깊게 사고하고 정리하여 이야기하는 부분이 결여되어 그때부터 책을 좀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처음 접한 영어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문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였다. 마침 나도 마라톤을 하고 있어서 그의 에세이가 조금 쉽게 다가가지 않을까하여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에 책을 한국어번역본으로도 읽고 그리고 다른 책들도 조금 읽어봤다. 한 작가의 여러 책들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어 아마도 내가 본 책들을 되집어보면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가장 많이 읽었고, 그 다음이 하루키일 듯 하다.


재활병원을 7월 중순부터 다니게 되었는데 이 재활병원의 프로그램들은 보통 30분이나 1시간 단위이고, 이 프로그램이 할당된 시간을 꽉꽉 채우는건 아니고 약 20분 혹은 40분정도에 끝을 맺게 되어 짜투리 시간이 많이 남기는 하는데 그 시간마다 핸드폰을 보는건 좀 아닌 듯 하여 하루키의 에세이를 항상 지참하여 재활병원을 나섰다. 아무래도 소설을 보다가 짧은 시간에 끊고 또 끊고 하면 내용이 잘 연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선택한 것이긴 한데 상황에 참 잘 맞는 듯 하기도 하고, 그리고 앞뒤 내용의 연결이 필요하지 않아서 자투리 시간을 보내기엔 나쁘지 않은 듯 하다.


잡문집이라는 책을 현재 읽고 있고 하루키의 번역가로서의 에세이 파트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잔잔한 마음의 호수에 파동이 일어나며 독일책들을 번역하는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분간의 짜투리 시간이 있어 심근경색 관련 경험담이 담긴 에세이가 있나 중간에 찾아보다가 대부분의 책들이 번역이 되지 않았구나 하는걸 찾아본 다음에 잡문집을 읽다가 문득 이 생각이 들어 앞으로 대략 12년간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책들을 번역해보며 55세에 번역가로 등단? 하는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가는 물론 언어도 중요하긴 하다만 연륜과 경험도 무시하진 못하는 부분이 있고, 그리고 어쨌거나 독일에 살고 있고 이런 저런 부분으로 독일과 한국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자라온 사람으로써 어떻게 조금이나마 두 나라를 위해 티끌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나와는 달리 독일에 태어나 독일의 교육 시스템 및 사회 시스템에 길들여질 내 아이를 위해서도 지금의 언어구사로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커서 공부해서 더 나빠지는게 뭐가 있을까 싶다. 


또 어떤 다른 바람이 불어서 아니면 불붙은 의지의 기름창고가 금방 바닥나서 금방 접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하루에 30분 아니면 1시간은 독일어 서적을 읽거나 아니면 글을 써보거나 아니면 독일어 서적을 번역해보거나 하는 꾸준한 활동을 해보려 한다. 이게 처음에는 참 어려울거 같은데 또 하루가 일주일로 쌓이고, 그리고 한달로, 일년으로 쌓이게 되면 무시하기 어렵게 될지도 모르겠지. 


지금의 이 글은 나중에 혹시나 방향을 잃었을 때나 혹은 처음의 마음가짐이 흔들렸을 때 다시 읽어보면 나쁘지 않을 듯 하여 갑자기 노트북을 켜고 주구장창하게 글을 남긴다. 


에이 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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